가을 가을 하지 않다
가을이 되었음에도 이제야 습도가 낮아졌다.
가을 같지 않은 가을
그래서 엉덩이 상처는 그대로였다.
몸 상태도 그리 좋아지지 않는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이제는 면역력도 떨어지는 시기다.
열을 생성 못 하므로 더욱 더 신경 써야만 한다.
너무너무 예민한 위장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없어 애만 타들어 간다.
위장도, 피부도,
환경적인 요인도
많은 문제 중 그 어느 것 하나
작은 것조차도 해결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나아지려고
무진장 노력하고 있는데 결과는 미미하다 만다.
어제, 오늘 아침 날씨가 차디차다.
보온에 더 신경 써야겠다.
입을 옷이 마땅찮은데 이 역시 어려운 숙제다.
어쩔 수 없이 아쉬운 대로 핫팩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옷뿐만 아니라 이불의 불편함도
몸이 견뎌내기 점점 어려워진다.
답이 없는 숙제를 나열해 놓고 생각한다.
오늘도 싸우고 견디며 살아냈다.
나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해냈다.
매초 매분 애쓴 나 자신에게
‘나를 위해 수고했다’ 한 마디 던져본다.
고군분투하는 삶이지만
감사로써 하루를 마무리 한다.
블로그 10/28/25
가을이 왔습니다.
창밖의 은행나무들은 눈이 부시도록 노랗고
햇살은 더 없이 투명합니다.
유난히도 길고 무더웠던 지난 여름이
흔적도 없이 떠나간 후
날들은 선물처럼 신선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여기
‘가을’ ‘가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4계절이 분명한 이 땅
그러나 각 계절의 저마다의 모습들은
그녀에겐 다만
저마다의 난관들로 다가올 뿐입니다.
허물어져가는 위의 내벽과 피부와 손가락과
나을 줄 모르는 욕창과
체온조절을 못하는 육체와
극도로 제한되는 음식들과 입어야 할 옷들,
어느것 하나 익숙해질 줄 모릅니다.
날마다 새로운 도전장을 던지며
제각기의 칼날을 들이댑니다.
전쟁을 치르듯 싸우며 사는 이,
그 치열한 싸움들은
승리의 가능성 없이 그저 견뎌야 하는
관문들의 연속일 뿐입니다.
회복의 가능성이 없는 병마와의 싸움,
누구나 한 번 마주해야 할 실존적 문제이지만
그녀에게는 매일 매일 마주해야 할
지치는 싸움입니다.
삶 전체를 그러한 싸움으로 일관해 온 이,
이 사람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 어떤 의미인지 다시 묻습니다.
‘그녀의 이웃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역시 답을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수많은 답 없는 숙제들 같습니다.
그녀에게 작은 도움이 되어주는 일,
그로써 충분하지만
또한 그로써는 너무 모자랍니다.
내 그녀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다 한들
이 숙제는 풀어질 수 없을 듯 합니다.
지금껏 수많은 삶을 목격해 왔습니다.
사귐의 폭이 좁은 저에게는
대부분 간접적 목격이며 체험입니다.
그러나 그래서인지 저의 이해의 폭은
그녀 삶의 가장자리에서 멈추어 버립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그 영역에
간신히 몇 발자욱 들여놓았지만
그뿐입니다.
그녀가 이길 수 없는 병마와 싸워야 하듯
저 또한 가능하지 않은 일과 싸워야 하나 봅니다.
그녀의 싸움처럼 이길 수 없는 건 아닐지 모르나
그녀의 소식을 대하며
그녀보다 더 절망하고 마는 여린 사람으로서
종종 앞이 캄캄해 집니다.
반면, 매일매일 놀랍도록 살아남는 그녀를 보며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참으로, 아직도 멀었습니다.
그녀의 삶에 그 어떤 이해의 시선을 얻게 될 날이.
아직도 온종일 그녀는 그녀이고
저는 저일 뿐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깨어나면
저는 그녀가 오래전에 포기한 일을
의식도 없이 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오래전에 빼앗긴 즐거움을
즐거운 줄도 모르고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면 곧 ‘오랜 이웃’
또는 ‘오랜 친구’라는 말이 생경스러워집니다.
이것이 아닌데….
그 어떤 깨부수어야 할 제 안의 벾을 느낍니다.
오를 수 없는 거대한 돌산을 앞에 한 듯
막막해져 버립니다.
이웃으로 주어진 그녀에게 이웃이 되는 일이
저에겐 이토록 어렵습니다.
저의 ‘이웃사랑’이란 이렇듯 빈곤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매일매일 승리합니다.
하루치의 생존 자체가 승리인 것입니다.
전쟁, 싸움, 승리… 그 무거운 단어들을
일상의 언어로 삼고 살아가는 그녀,
하루를 닫을 무렵이면 그 승리를 자축합니다.
“…매초 매분 애쓴 나 자신에게
‘나를 위해 수고했다’ 한 마디 던져본다.
고군분투하는 삶이지만
감사로써 하루를 마무리 한다.”라고.
저는 ‘수고했다’는 그녀의 자위에서
지칠대로 지쳐버린 그녀의 육신을 어루만져주시는
하느님의 따스한 손길을 봅니다.
그리고 그 손길에 대한 감사로써
그녀는 하루치의 노고를 마무리합니다.
이렇게 그녀는 오늘도 자신의 삶 자체로써
저에게 깊고 큰 메시지가 되어줍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하느님 사랑의 메시지이듯
그녀는 저의 이웃들 중 가장 강렬하면서도
가늠할 수 없이 깊은 메시지입니다.
‘진정한 이웃이란 무엇인가’라는
쉽고도 어려운 하느님의 질문입니다.
그 질문에 천착함으로써,
그녀의 삶에 좀 더 깊이 다가감으로써,
세상의 고통에 조금이나마 발을 담그라는 말씀입니다.
그녀에 비해 너무나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음에
섣불리 감사하려들지 말고
어떻게 하면 ‘그녀’라는 메시지를
온전히 받아안을 수 있을지 고민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한 그녀의 삶과 저의 삶이 공존하는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오늘도 같은 메시지를
다른 빛으로 내려주시는 우리의 하느님,
그분께서는 진정 사랑이십니다!